갯돌 소식/관극후기

갯돌 창작극 홍어장수 문순득표류기 관람평-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장 강봉룡 교수

극단 갯돌 2012. 1. 12. 13:18

 

 

 

<관람평>

불굴의 바다 사나이 문순득과 극단갯돌이 만난 그날

 

강봉룡(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장)

 

필자는 여수와 군산에 사는 지인이 일부러 “홍어장수 문순득 표류기”를 관람하기 위해서 목포를 찾는다기에, 그 주제에 걸맞게 홍어요리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서 함께 공연장에 가기로 하였다. 그런데 그날 목포지역에는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은 그 험한 눈길을 헤치고 홍어요리로 유명한 목포 인동주마을에 모였다. 폭설 땜에 공연이 취소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걱정을 하면서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헤쳐 공연장에 이르니 공연은 의연히 진행되고 있었다. 눈길을 헤치고 모인 우리의 그 과정들이, 험난한 표류의 풍랑을 뚫고서 3년여만에 기필코 귀환에 성공한 문순득의 그 역정과 오버랩되면서, 공연을 관람하기도 전에 이미 감동이 밀려오고 있었다.

 

19세기 초 흑산도 해역의 태도라는 섬에서 홍어를 띠어 배에 싣고 돌아오던 중에 표류하여 그 험한 동아시아 바다를 누볐던 홍어장수 문순득의 파란만장한 바다 모험, 그가 경유한 오키나와, 필리핀, 마카오, 그리고 광조우 등지에서 가진 낯선 이국문화의 체험, 그리고 우이도에 돌아와 당대 최고의 학자인 정약전과 이강회 등과 만나 나누었던 대담들. 그 자체 드라마틱한 소재일 수밖에 없는 문순득의 특별한 바다 경험들을, 극단갯돌은 화려한 볼거리와 표현기술을 버물려서 수준높은 마당극으로 그려내는데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1981년 창단하여 30여년 목포의 공연문화를 선도해온 극단갯돌. 그들은 근래 ‘도서해양문화’의 전도사 역할을 자임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어 특히 인상적이다. 장보고의 뒤를 이어 서남권 해양패권을 노리던 압해도 수달장군의 위용을 그린 “천년의 바다, 수달장군”, 정조대왕 앞에서 직접 격쟁상소하여 섬 주민들의 인권을 대변했던 흑산도 김이수의 활약상을 극화한 “낭청 김이수”, 하의3도 농민항쟁을 기린 “하의3도 해원상생굿”, 삼학도와 유달산의 설화를 배경으로 섬 처녀와 유달산 장수의 사랑이야기를 뮤지컬로 그려낸 “사랑일레라” 등을 쏟아낸데 이어, 2010년 12월 29일과 30일에는 우이도 홍어장수 문순득의 파란만장한 표류 경험을 극화한 마당극 “홍어장수 문순득 표류기”를 무대에 올렸다.

 

목포는 우리나라 섬의 60%를 가진 서남권 다도해의 중심도시이다. 목포가 1897년 개항과 함께 일개 소촌락에서 근대도시로 급성장하면서, 섬의 주민들이 모여들어 목포의 가장 중요한 구성원을 이루었다. 그러므로 목포 문화의 뿌리와 정체성은, 단순한 ‘해양문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섬 사람들이 오랜세월 험난한 바다와 교감하고 교류하면서 독특한 삶의 문화로 응축해온 ‘도서해양문화’에 있을 수밖에 없다.

 

흥미진진하면서도 애잔하고, 또 그러면서도 격정적인 진귀한 이야기들이, 저 목포 앞바다에 널려있는 섬들의 모양새와 숫자만큼이나 다채로운 색깔을 발하면서, ‘도서해양문화’의 보물창고에 간직되어 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이를 눈치챈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이제 30년 연륜을 자랑하는 극단갯돌이 이들을 끄집어내어 공연을 통해 목포 사람들로 하여금 공유하고 향유하게 하고, 전국에, 세계에 알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극단갯돌이 ‘도서해양문화’로 특화된 세계적인 극단으로 우뚝 서기를 기대한다. 그렇게 되는 그날은 목포가 ‘도서해양문화 중심도시’, ‘도서해양문화 수도’임에 손색이 없다는 것을 자타로부터 공인받는 그날이 될 것이다. 세계를 누빈 바다 사나이 문순득과 극단갯돌이 만난 그날에, 미래의 멋진 그날을 떠올려 본다.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도 그 대열에 함께 서서 나름 힘을 보탤 수 있다면 큰 자랑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