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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갯돌 상임연출 손재오씨 -조선일보

극단 갯돌 2011. 12. 2. 03:04

조선일보

[호남] [이 사람] "마당극 '남도 뮤지컬' 개척하고 싶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12/01/2011120102468.html

[극단 갯돌 상임연출 손재오씨]
외길 인생, 지역 대표 연극인 '홍어장수' 연출 감격 못잊어… 최고 권위 '광대상' 받아

"폭설을 뚫고 나타난 관객들을 보는 순간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그 감격 평생 잊을 수 없을 겁니다."

전남 목포를 기반으로 한 극단 갯돌 상임연출 손재오(47)씨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1년 전 '홍어장수'라는 특이한 주제로 자신이 총연출한 연극이 기상 악화로 어려움을 겪었다는 일을 설명하는 자리에서였다.

손씨는 지난해 12월 목포시민문화체육센터에서 이틀간 '홍어장수 문순득 표류기'란 마당극을 무대에 올렸다. 첫날 많은 눈이 내렸지만, 300명의 관객이 몰렸다. 하지만 다음날엔 폭설이 쏟아졌고, 결국 기다렸던 관객은 오지 않았다.

"하릴없이 낙담하고 있을 때 관객 50여명이 눈길을 헤치고 공연장에 도착했어요. 감사한 마음에 그냥 펑펑 울었습니다. 단 한 명의 관객을 위해서라도 혼신을 다해 연극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극단 갯돌 상임연출 손재오씨는“남도 특유의 정서를 담은‘남도 뮤지컬’장르를 새롭게 개척하고 싶다”고 말했다. /조홍복 기자

손씨는 "더 많은 관객들에게 이 작품을 선보이고 싶었다"며 지난달 9일부터 이틀간 같은 장소에서 다시 무대에 올렸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틀간 1000명이 넘는 관람객이 울고 웃었다. '감동적이었다' '눈물이 났다' '표류라는 인생을 역사적으로 잘 해석했다'는 등의 반응이 많았다.

신안군 우의도 출신의 문순득은 실존 인물이다. 문순득은 서남해 특산물인 홍어를 나주 영산포에 팔던 상인이었다. 25살 때인 임술년(1802년) 정월 작은아버지 등 5명과 함께 배를 타고 흑산도 인근에서 홍어를 사서 돌오다가 풍랑을 만나 일본 오키나와까지 밀려갔다. 그곳에서 9개월을 지낸 뒤 돌아오다 또다시 풍랑을 만나 필리핀으로 표류했다. 이후 중국을 거쳐 고향까지 돌아오는 데 3년2개월이 걸렸다. 당시 유배 중이었던 정약전은 문순득의 표류 경험을 '표해시말'에 남겼다.

손씨는 문순득이 표류 상황에서도 좌절하고 않고 이겨내는 과정을 마당극 형식으로 표현했다.

그는 "4년 전 신안군문화원에서 문순득이란 인물을 처음 알게 된 뒤 분석했다"며 "홍어의 삭힌 맛처럼 끈질긴 인간미를 가진 문순득을 통해 남도의 정서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1981년 설립된 극단 갯돌은 많은 섬들로 구성돼 문화적으로 소외된 신안군 각 섬을 직접 방문해 각종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목포와 가장 가까운데 아직 지역 문화단체가 없습니다. 꾸준히 섬 사람들과 교감을 통해 지역 주민 특유의 정서를 배우들이 체득하고 있습니다."

무안군 망운면이 고향인 손씨는 13세 때 고향을 떠나 목포에 정착했다.

"중학교를 도시에서 다니고 싶었어요. 6학년 때부터 줄곧 살았으니 목포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죠."

그는 아주 어렸을 때 집에 불이 나 화상을 입었다.

"주위에서 살아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했어요. 그런데 기적적으로 살아났습니다."

그의 얼굴과 몸에는 큰 흉터가 남아 있다.

"남들보다 약한 신체조건을 극복하려고 노력했어요. 성격도 대단히 내성적이었거든요. 다양한 다른 사람의 인생을 연극 무대에서 살아 보면서 영감과 삶의 기운을 얻었습니다. 연극을 계속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1984년 대입에 낙방한 뒤 무작정 상경, 닥치는 대로 장사도 하고 공장엘 다녔다. 그러다 한 극단에 들어갔고, 그 이후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다. 1년 뒤 목포로 내려와 갯돌 탈춤 강습회에 참여하면서 연극인의 삶을 시작했다.

패기와 열정으로 예술혼을 불태웠던 그는 1996년 마침내 극단 대표가 됐다. 하지만 그는 "선수가 경기에 나가야지 코치만 하고 있으려니 참을 수가 없어 1년 만에 다시 무대로 돌아왔다"고 했다.

손씨는 지난 9월 민족극계 최고 권위 '민족 광대상'을 받았다. 개인의 예술적 성과와 함께 소속 극단의 기여도, 민족극 운동의 공헌도 등을 아울러 평가해서 시상하는 상이다.

그는 "광주 5·18을 소재로 다룬 총체극 '자스민 광주'가 결정적인 계기가 된 듯하다"고 했다. 지난 7월 무대에 올린 '자스민 광주'를 총연출했다. 세계적인 공연 축제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가했다. 평론기관인 베이비 브르드웨이로부터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역사적 조명과 인류의 영적 연결 관계를 잘 표현한 뛰어난 작품'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손씨는 그동안 뮤지컬 '사랑일레라', '난영'과 총체극 '자스민 광주', '5·18광주민중항쟁 전야제', '6월민주항쟁 전야제', '문순득표류기', '민권운동가 김이수' 등을 연출했다. 갯돌의 레퍼토리 작품으로 '남도천지밥' '품바품바' '추자씨 어디가세요' '소금' '김치타악퍼포먼스' 등을 연출했다.

그는 연출은 물론 배우, 극작에도 뛰어난 역량을 가지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동학혁명을 다룬 마당극 '칼노래 칼춤'과 오월항쟁을 다룬 마당극 '일어서는 사람들'에서 주인공을 맡아 '웃음 속울음'의 한국적 연기미학을 창출한 이 시대 최고의 광대로 주목받았다.

올해 마지막 공연 준비에 여념이 없다. 그는 남도의 지역 소재가 가장 국제적으로 경쟁력을 갖췄다고 믿는다.

"앞으로 마당극 형식의 '남도 뮤지컬'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고 싶어요. 뮤지컬이란 틀에 구전돼 온 남도의 신화와 설화 등을 구수한 사투리로 담을 겁니다. 연극도 이제 융합의 시대에 맞춰 변화해야 합니다. 그 중심에 갯돌이 있습니다."

 

 

조홍복 기자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12/01/201112010246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