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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군 님의 블로그에서 퍼옴> 갯돌 중국동북3성 한국전통예술순회공연 -둘째날

극단 갯돌 2011. 9. 14. 17:43

2011년 중국 연변지역 전통예술 공연 참관기 - 둘째 날 | 여행의 추억(외국) 2011-09-07 18:34

 

***이 글은 중국하얼빈에서 사시는 공룡박사 이홍군 선생님께서 운영하시는 예스24 블로그에서 퍼왔습니다.

이홍군 박사님은 순회공연의 주관단체인 민족미학연구소의 채희완 부산대 교수님의 지인이십니다.

 

중국 순회공연에서는 갯돌에게 중국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주셨고 우리민족의 중국이민사와 세계와 통하는 철학 등을 이야기해주셨습니다.

 

특히 공연팀에게 웃음으로 활력소를 불어 넣어주시는 유머실력은 대단했습니다.

자니윤쇼를 뛰어넘는 재담과 익살은 힘든 여행의 고단함을 씻는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여기 선생님의 기행을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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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백두산 천지, 이도백하, 용정시, 연길시, 도문시, 훈춘시, 방천풍경구 (구글 위성지도 편집)

 

일정표를 보니 두 번의 공연과 세미나가 3일간에 걸쳐 있다. 오늘 29일엔 훈춘시(珲春市)에서의 합동공연이 있고, 내일 20일엔 용정에서의 공연이 있다. 그리고 세미나가 31일이다. 연길시에 머물면서 훈춘시, 용정시를 다녀온다. 연길시에서 어제 도착한 날엔 연길시의 북동쪽에 있는 도문을 다녀왔다. 그러니까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수도인 연길시를 중심으로 버스를 타고 연변자치주의 여러 도시를 갔다 온다. 그리고 공연과 세미나가 끝이 나면 9월 1일엔 백두산 천지를 가고자 이도백하에서 하룻밤을 자고 백두산을 다녀온다. 그러고 보니 빡빡한 일정이다.

 

투숙한 호텔은 세기주점(世纪酒店)이라 한다. 23 층의 대형 호텔이다. 그런데 호텔 밖과 안이 낡아 4성 호텔이라는 격에 어울리지 않는다. 오래되었어도 지속적인 투자를 해 관리를 잘하면 좋을 텐데 관리도 썩 잘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예전엔 황금성대주점(黄金星大酒店)이라 한 모양이다. 한국인 단체 관광객이 많이 투숙을 한다. 조찬이 포함되어 있다고 해서 아침을 6층의 식당에서 3일간 먹었다. 한식과 중국식 음식으로 제공하지만, 이 또한 격이 떨어져 푸짐하지 않고 인색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번 공연에 참여한 일행은 한국의 부산, 마산, 전주, 광주, 목포 등 한반도 남쪽 각지에서 왔다. 육로로 와도 그리 멀지 않은 한반도의 시작인 이곳으로 우리 국토라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을 왕래할 수 없는 북한 땅이 가로막고 있어 비행기를 타고 우회해 왔다. 이렇게 해서 와 강폭이 넓지도 않은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 땅을 바라봤으니 그 마음이야 두말할 것 없이 착잡하였을 것 같다. 한 민족이 둘로 갈라져 66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그러고 보니 해방둥이라고 하는 1945년생은 노인이 되었다. 한국에선 65세면 경로증이 발급되어 관광지 입장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나이를 훌쩍 넘겨 버린 것이다.

 

어제 도문(图们)에 새로 만들어 놓은 중국 조선족 비물질(무형) 문화유산 전람관 입구에 표시해 놓은 입장료 징수규정을 보니 중국은 70세부터 면제이고 60세부터 70세 사이는 반값을 내도록 해 놓았다. 적용하는 나이에 차이가 있지만, 경로사상이 있는 두 나라 모두 노인에겐 우대정책을 시행한다. 하지만, 여행을 하면 자연 많이 걷게 마련이라 나이를 먹으면 점점 더 여행하기가 어려워지니 건강을 잘 유지해야 혜택도 보게 된다.

 

오늘 공연을 위해 어제저녁과 아침엔 총연출을 맡은 선배와 각 팀의 대표가 함께 모여 회의를 했다. 공연 순서도 짜고 사회자 지정도 한다. 오늘 공연은 훈춘의 상록수 무용단과의 합동공연이어서 더욱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참석하는 관객도 고려해서 공연 내용도 조절한다. 모두가 징, 북, 장구와 같은 전통 악기를 잘 다루고 오랫동안 훈련을 해 왔기에 척하면 삼천리인 것 같다. 그래도 총연출을 맡은 선배는 좀 더 구체적인 지시를 한다. 회의가 끝이 나자 훈춘시를 향해 떠났다.

 

공연 시각이 오후 2시 30분이라고 한다. 연길시에서 훈춘시까지는 약 106킬로로 대략 2시간 50분이 걸린다고 하니 넉넉잡고 3시간의 여정이다. 어제 갔던 도문시(图们)가 약 47킬로였다. 도문을 지나 동쪽으로 온 만큼보다 10킬로를 더 가면 훈춘시가 있다. 훈춘시 시내로 들어가기 전에 남쪽으로 약 82킬로를 더 가 중국, 러시아, 북한 3개국의 국경이 만나는 지점이라고 하는 방천풍경구(防川风景区)를 들렸다. 바리케이드를 쳐 놓고 입장료를 받고 있다.

 

입장료를 내고 올라가니 중국 국경수비대가 주둔하는 곳이다. 이곳에 전망대를 해 놓고 중국, 러시아, 북한 3개국을 각 방향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 놓았다. 멀리 두만강의 물줄기가 동해로 빠져나간다고 하니 수평선으로 보이는 곳이 동해인 모양이다. 북한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데 우리 일행을 초청한 연변민간문예가협회 대표가 설명해 준다. 모두 둥그렇게 모여 설명을 들었다.

 

이곳은 닭이 울면 세 나라에서 들을 수 있고, 개가 짖으면 세 나라에서 놀란다.(鸡鸣闻三国,犬吠惊三疆)는 지점이다. 중국, 러시아, 북한 세 나라가 국경을 맞댄 곳이기도 하고, 동해와 연결되어 있다는 지리적인 장점 때문에 훈춘시는 최근 중국 정부가 동북 3성의 물류기지로 선정한 도시로 개발이 한창이라고 한다. 러시아와 북한으로 가는 철도와 공로에 세관을 설치해 놓은 훈춘구안(珲春口岸)은 컨테이너를 실은 기차와 트럭이 국경을 넘어다니고 있고 머지않아 대형 선박이 정박할 수 있는 접안시설이 들어서면 국제적인 물류기지로 발돋움하게 된다고 한다.

 

전망대에 올라가서 朝鲜(DPRK),俄罗斯(RUSSIA), 그리고 日本海(JAPANESE SEA)라 붙여 놓은 곳을 배경으로 하여 사진을 찍었다. 우리의 동해를 일본해라고 표기를 해 놓은 것을 보게 된다. 누군가가 붙여 놓은 표지에 한글과 영문으로 동해와 East Sea라 써 놓았다. 아마도 이곳을 방문한 한국인 중 누군가가 잘못 표기된 것에 불만이 있어 그리해 놓은 것이다. 일본의 식민지를 겪었으니 이런 현상이 발생했을 터인데 해방 후 66년이 지났는데도 바로 잡히지 않고 있으니 답답하기 그지없다.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지만, 이 명칭이 한국인의 자존심을 건드린다. 일본은 독일과는 달리 과거 저지른 죄를 말끔하게 정리하지 않고 있다. 이웃 국가에 엄청난 죄를 짓고도 과거의 일은 일본제국주의가 저지른 일이라며 발뺌을 한다. 그리고 미국을 방패 삼아 납작 엎드려 있는 것 같더니 다시 고개를 들어 이웃국가를 자극한다. 일본해란 지명 문제도 그렇고 독도도 자신의 국토라고 주장하여 한국민의 분노를 일으킨다. 일본을 편들 것 같지 않은 피해자인 중국이 어째서 동해를 일본해라 표기한 표지를 붙여 놓고 있는지 의문이다. 더구나 이곳은 조선족자치주라 하지 않는가.

 

방천풍경구 안에 정자 형태의 건물을 크게 짓고 있다. 훈춘시도 개방의 물결을 타고 있다. 세 나라의 변경이라는 지리적 사실로 저 북쪽 내몽고자치주 만저우리시(满洲里)처럼 변해가는 것 같다. 중국, 외몽골, 러시아 세 나라의 국경이 맞닿아 있는 만저우리시(满洲里)는 훈춘시와 마찬가지로 구안(口岸)이다. 그리고 기차가 지나는 커다란 문을 해 놓았는데 그 문을 국문(国门)이라 한다. 20만 인구의 이 도시는 인구 28만이라는 훈춘시와 비슷한 지리적 환경이지만 좀 더 일찍 개방이 되어 국경 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져 훈춘시보다는 더 발전한 도시가 되어 있다.

 

훈춘시도 중국 정부가 동북아시아의 물류거점 도시로 강력하게 개발을 추진한다고 한다. 그 개발의 물결이 점차 피부에 와 닿게 일어나는 것 같다. 훈춘시 시내로 들어오니 거리가 깨끗하고 새로 지은 건물이 눈에 많이 띈다. 어느덧 점심때가 되었다. 합동공연을 하기로 한 훈춘시 상록수무용단의 단장이라고 하는 나이 든 여자가 길 안내를 한다. 공연장에 가기 전에 꼬리곰탕으로 점심을 먹었다. 총연출을 맡은 선배와 실무 담당자는 공연 협의를 하고 나서야 점심을 서둘러 먹는다.

 

잠시 연길의 호텔을 출발하여 방천풍경구(防川风景区)까지 가는 동안 버스 안에서 일어났던 일을 이야기해야겠다. 3시간 이상을 버스를 타고 가야 하니 무료함 때문에도 주위에 앉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가게 된다. 사회자와 길 안내를 받은 안내자가 가는 곳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끝내자 일어난 일이다. 차 안에 함께 타고 간 일행 중에는 연변대학의 교수 한 분도 있고 우리 일행 중에도 대학교수가 있었다. 대화가 오가던 중 중국의 국토면적과 유럽대륙 전체의 면적 중 어느 것이 큰가 하는 질문이 제기되었다. 그리고 연이어 중국과 미국 중 어느 국가의 면적이 더 큰가도 화제가 되었다.

 

유럽 전체와 중국의 크기는 비교해 본 적이 없어 대답해 주지 못하지만, 중국과 미국의 크기는 비교해 본 적이 있어 미국이 약간 더 크다고 하니 두 교수가 모두 그럴 리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세계에서 가장 국토 면적이 가장 큰 순위로 1위가 러시아, 2위가 캐나다, 3위가 미국, 4위가 중국이라고 하니 또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한다. 그러면서 연변대학 교수가 중국의 면적은 960 제곱 킬로로 미국보다 크다고 주장한다. 서로 의견이 팽팽히 맞서게 되었다. 그래서 확인을 할 겸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찾아보았다.

 

중국과 미국이 큰 나라인 것은 맞지만, 그 면적까지 기억할 수는 없기에 나는 순서를 기억해 놓았다. 몇 달 전 세상을 떠난 친구가 이런 부류의 질문을 하는 것을 아주 좋아해서 그 친구를 만나면 늘 다소 엉뚱한 질문에 재미있는 대화가 이어졌기에 이 친구 생각도 났다. 그러면서 오래전 이 친구의 질문에 답을 해야 하기에 찾아본 것 중에 바로 이 질문이 있었기에 자신 있게 이야기한 것인데 두 교수가 완강하게 아니라고 하니 뒤로 물러나야 했다. 인터넷만 있었다면 금방 찾아 확인할 수 있는데 버스 안이라 승부를 가리지 못한 것이다.

 

세상을 떠난 친구 덕에 알게 된 이 질문의 답을 다시 찾아보니 내 기억이 맞았다. 국토크기가 가장 큰 국가 순은 1위 러시아 17,098,242 제곱 킬로, 2위 캐나다 9,984,670 제곱 킬로, 3위 미국 9,826,675 제곱 킬로, 4위 중국 9,596,961 제곱 킬로이다. 그리고 보니 연변대학 교수가 중국의 국토크기가 약 960만 제곱 킬로라고 한 것은 그의 기억이 맞다. 대략 이야기하면 미국의 국토크기는 약 980만 제곱 킬로가 넘게 되니 미국이 중국보다 약간 크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의 국토면적은 중국인이 여권이 아닌 통행증을 갖고 갈 수 있는 대만(35,980), 홍콩(1,104), 마카오(28)의 면적을 다 합해도 미국보다 작다. (유럽연합의 면적은 4,324,782 제곱 킬로라고 하니 중국 면적의 반이 채 안된다.)

 

중국이 현재와 같은 크기의 국토를 갖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몽골족이 지배한 원나라가 망하면서 몽골족이 지배한 내몽고자치주 땅이 더해졌고, 여진족이 지배한 금나라와 만주족이 지배한 청나라가 망하면서 만주땅이 모두 복속되었으며 소수민족 티베트족이 서장자치주(西藏自治州)의 땅을 위구르족이 신장위구르자치주(新疆维吾尔自治州)의 땅을 보태주니 현재의 중국 영토가 되었다. 국가와 민족의 개념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시대에 발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두 분 교수도 자신의 주장을 확인해 보려고 사전을 찾아봤을지도 모르겠다. 세계지도에서 보면 미국의 국토면적보다 함께 모두 연결되어 한 덩이인 중국이 더 크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은 제정 러시아의 황제가 1867년 재정(財政)이 궁핍하여 720만 달러로 매각한 땅을 사서 미국령(領)으로 두었다가 1959년에 미합중국의 49번째 주로 만들었다. 미국의 주 중에 가장 큰 주가 알래스카주이다. 이 알래스카주가 국토의 면적을 크게 늘려 놓아 미국이 중국을 누르고 세계 제3위가 되게 한다.

 

아직도 세계 각국은 국경문제로 서로 다투고 있다. 특히 러시아와 중국, 중국과 일본, 일본과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내가 오래 머문 말레이시아는 필리핀, 브루나이, 인도네시아와 국경협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북한의 정권이 무너지면 북한이 지배하는 영토가 중국의 영토가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100여 년 전 조선왕조가 멸망하며 일본제국주의자가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었을 때 돼지만도 못한 상류층 인사가 작위와 돈을 받았다는 사실은 무얼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일까. 그리고 나라 잃은 설움은 누가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었는가.

 

국내에서는 잘 느끼지 못하던 애국심이 외국에 나가게 되면 더 느끼게 된다고 한다. 외국 중에서도 특히 중국의 연변 조선족 자치주와 동북 3성의 하얼빈, 장춘, 대련, 심양을 방문해 본 한국인이면 모두가 더 애국자가 되는 것 같다. 그만큼 한민족이 남겨 놓은 문화유산이 무형, 유형으로 남아 있는 곳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일본 식민지 시대를 겪으면서 항일운동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났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후 2시 반 공연 시각 전에 훈춘시 공연장에 도착했다. 공연장 건물로 들어서자 합동 공연을 할 훈춘시 상록수무용단의 단원은 공연 의상을 입고 우리를 맞아 준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공연팀도 준비에 들어갔다. 한국을 떠나 오랜 기간 외국에서 생활해 왔기도 하고 또 그간 마음속에 있긴 해도 공연을 볼 기회가 별로 없었기에 나 자신도 오늘의 공연을 기대하게 된다. 선배의 말씀이 공연에 참여한 출연진 모두가 전통예술을 지켜나가겠다는 의지가 충만하여 열심히 기능을 습득해 왔다고 한다.

 

우리의 전통예술은 현장성이 참 강하다. 심리적 거리감을 갖게 되는 무대에 올려놓는 것보다 한 마당에 둘러서서 공연하면 현장성은 더 해진다. 마침 공연장이 원형으로 생겼다. 쭉 둘러앉아 공연을 보게 되어 우리의 전통예술을 공연하는 데는 안성맞춤이다. 작은 무대가 있는 벽면에 현수막이 걸렸다. '한민족의 문화적 동질성 회복을 위한' 중국 동북 3성 한국전통예술 순회공연이라 적혀 있는 현수막이다. 그리고 다른 현수막에는 "한국 목포극단 중국 연변 상록수무용단 합동공연"이라 되어 있다.

 

관중은 줄잡아 250여 명은 될 듯하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관중은 조선족 동포와 중국 한족이 반반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보니 연변 조선족자치주 내의 종족별 인구 구성비율도 예전과는 달리 오히려 중국 한족이 더 많다는 이야기이고 보면 관중의 비율이 반반인 것도 이해가 된다. 많은 조선족 동포가 한국에 가 있을 뿐 아니라 연변 자치주는 고향이라 명절, 휴가 때에나 돌아오고 중국, 세계 전역에 돈을 벌러 가 있다는 것도 실감하게 된다.

 

한복으로 잘 차려입은 양측 사회자가 시작을 알리는 멘트를 하면서 간단한 소개와 서로 인사를 나누고 바로 공연은 시작되었다. 우렁찬 징소리가 울리자 경쾌한 꽹과리의 삼진박 장단에 맞추어 길놀이가 시작되고, 이어서 광주에서 온 공연팀의 꽹과리와 장구로 이루어진 타악기 공연이 시작되었다. 주변 관중을 돌아보니 벌써 우리 가락에 젖어든 것 같다. 서로 호흡을 맞추어 열정을 갖고 온몸을 던져 한 연주가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진다. 이어서 봉산탈춤이 시작되었다.

 

한국에서 장만해온 전승 황해도 봉산탈춤이다. 해학을 담은 춤이 큰 동작으로 실연 된다. 큰 웃음은 아니지만, 관중 속에서 웃음이 터져 나온다. 춤을 보고 있노라니 40년 전 선배와 함께 탈춤의 현장으로 달려가던 때가 생각이 난다. 그때 이후 40여 년간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무형문화재를 발굴하고 보존하며 현장을 지켜나간 선배의 열성이 그대로 담겨 있는 듯하다. 한민족의 아름다운 문화적 자산이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조선족 동포와 이들 조선족 동포와 함께 삶을 살아가는 중국 한족에게 펼쳐 쳤다.

 

한바탕 봉산탈춤이 펼쳐졌다. 이어서 훈춘시 상록수무용단의 공연이 계속된다. 얼굴에 화장을 짙게 하여 잘 몰랐으나 이 무용단의 단원은 대부분 정년퇴직을 한 사람이 모여 다시 춤을 익힌 것이라고 한다. 젊은 나이엔 생업 때문에 하고 싶던 취미활동을 하지 못하다가 정년퇴직을 하고 나서 하고픈 활동을 하는 만큼 이번 공연을 위해서 더욱 열심히 연습을 했다고 한다.

 

전통 한복을 개량한 치마, 저고리를 입었다. 분홍색과 노란색으로 서로 대비되는 의상을 입었으니 눈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우리 전통예술단이 악기를 직접 연주하며 공연을 하는 것과는 달리 가라오케의 반주에 맞추어 춤을 춘다. 우리 전통예술단이 들려주는 연주가 관중 속에 파고들며 심금을 울려주는 것과는 많은 대조가 된다. 우리 전통예술이 갖는 현장성은 그래서 반감이 되고, 그룹 댄스와 마찬가지로 정해진 순서에 따른 연기만 보게 된다. 연습을 많이 해서 매끄럽게 진행은 되었지만, 관중의 감흥을 끌어내진 못했다.

 

이어서 작은 북을 들고 남자 무용단이 상모 놀이를 선보였다. 마찬가지로 출연자 모두는 정년퇴직하고 새롭게 동작을 익혀 공연에 임했다고 한다. 최고 고령자가 65세를 넘었다고 하니 모두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었다. 그러면서 전통예술의 맥을 이어주는 젊은이가 적은 것 같아 은근히 걱정도 되었다. 한국의 각지에서 온 우리 출연진의 면모를 보면 젊은이가 더 많다. 그만큼 우리의 전통문화에 관심을 두고 젊은 나이에 예능전문인이 되어 공연하러 왔으니 자랑스럽기도 하다.

 

사자춤도 선보였다. 동작 하나하나를 구성하려고 힘든 연습을 했을 것이다. 사자춤이 진행되자 관중석에서는 저절로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앞과 뒤에서 호흡이 잘 맞아야 할 터인데 척척 한 동작 한 동작 풀어간다. 하이라이트에선 사자가 벌떡 일어섰다. 사자춤이 끝나자 많은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몸을 아끼지 않은 공연을 보여주었다. 이어 상록수무용단의 장구춤이 이어졌다. 화려한 춤 동작은 없었지만, 할머니라 불릴 나이에 그만큼 연습을 하여 공연을 보여주니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박수를 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민족의 한과 애잔한 슬픔을 가득 담은 아리랑이 공연장에 울려 퍼지자 공연장 안은 눈물을 훔치며 노래를 따라 부르는 조선족 동포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나도 여태까지 들었던 어떤 아리랑 노래보다 이때 들은 아리랑이 내 심금을 울려주었다. 아리랑 노래를 듣고 흘리는 눈물은 카타르시스가 되어 본인의 삶으로 다시 돌아갈 것이다. 우리의 가락과 장단은 우리 한민족의 핏속에 녹아들어 있는 듯했다. "아리랑 처녀"는 그 특유의 재담으로 숙연해진 분위기를 반전시켜 나갔다. 그리고 관중 모두를 한 덩어리로 묶어 버렸다.

 

상록수무용단의 창작무용을 감상하고 오늘의 주무대라고 할 수 있는 목포에서 온 극단 갯돌의 전통 풍물 마당극이 이어졌다. 예능전문인답게 많은 연습을 한 것을 쉽게 느끼게 된다. 관중과 쉽게 한 덩이가 되어 마당극이 이어진다. 불려나온 관중은 물론 둘러앉은 관중은 새로운 판이 펼쳐질 때마다 웃음꽃이 피어난다. 한바탕 웃고 나니 이 또한 카타르시스가 되어 우리의 삶에 돌아와 있다. '农者天下之大本也(농자천하지대본야)'라 쓴 글씨가 오늘따라 더 크게 보이는 것 같다. 정말 우리의 전통 소재로 만든 훌륭한 마당극이었다.

 

마당극이 끝나가자 합동공연을 했던 상록수무용단과 관중 모두가 어우러져 신나는 우리 장단에 맞추어 한바탕 춤판이 벌어졌다. 주체와 객체가 혼연일체가 되었다. 앉아 있는데 어깨춤이 절로 쳐졌다. 우리 전통 음악의 삼진박 장단의 위대성을 보게 된다. 박수가 쏟아졌다. 멀리 한국에서 온 예능전문인이 만들어 낸 훌륭한 공연을 본 훈춘시의 조선족 동포와 중국인에게서 박수가 쏟아진 것이다. 오늘의 공연은 합동공연이었기에 제한된 시간에 해야 해서 많은 생략이 있었다. 그래서 단독공연이 있을 내일의 윤동주 생가가 있는 용정시의 명동마을에서의 단독공연을 기대하며 귀가하는 버스에 올랐다.

 

 

3시간이 넘게 버스를 타야해서 중간에 한 번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렸다. 새로 닦은 고속도로에 잘 지어진 휴게소다. 하지만, 휴게소는 아직 오픈을 하지 않았고 화장실만 임시로 열어두었다. 이제 중국도 새로 건설하는 고속도로 변엔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진 휴게소를 지어 놓는다. 버스가 연길시에 도착하자 호텔 부근에 있는 오리지널 연길 냉면집에 가서 공연을 하느라 수고한 단원 모두와 함께 냉면으로 저녁을 먹었다. 내일 용정 윤동주 생가가 있는 명동마을에서의 공연이 기대된다.(계속) (2011년 9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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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쉽게도 4성 호텔이 쇠락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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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천풍경구(防川风景区)의 중국군 수비대 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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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리의 왼쪽이 러시아, 오른쪽이 북한이고 발딛고 서 있는 곳이 중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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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변민간문예가협회 대표가 설명을 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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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을 배경으로 기념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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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망대 벽에 붙은 북한 방향 표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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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을 배경으로 기념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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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를 배경으로 기념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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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本海는 당연히 东海(동해)나 韩国海(한국해)로 표기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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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침 러시아에서 북한쪽으로 기차가 두만강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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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천풍경구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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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지역을 청나라 땅으로 확보한 청나라 관리 吴大澄(1835~1902)의 조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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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리곰탕을 먹은 훈춘시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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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장에 걸린 현수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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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형의 건물이라 관중이 삥둘러 앉아 관람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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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합동공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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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놀이를 시작으로 공연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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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도 광주의 우리문화예술원 팀의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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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산탈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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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훈춘시 상록수무용단의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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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훈춘시 상록수무용단의 상모놀이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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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측의 사자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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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훈춘시 상록수무용단의 장구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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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민족의 민요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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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포 극단 갯돌의 마당극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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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당극의 끝마무리는 양측이 함께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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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용의 구성과 연기, 사설이 모두 훌륭했던 마당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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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연이 끝나고 기념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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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연을 한 원형의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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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로 건설한 고속도로 변에 지어진 새 휴게소(도문 봉사구역)

 

(참고) The world fact book에 기술된 면적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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