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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군 님의 블로그에서 퍼옴> 갯돌 중국동북3성 한국전통예술순회공연 -셋째날

극단 갯돌 2011. 9. 14. 17:45

2011년 중국 연변지역 전통예술 공연 참관기 - 셋째 날 | 여행의 추억(외국) 2011-09-08 23:18
***이 글은 중국하얼빈에서 사시는 공룡박사 이홍군 선생님께서 운영하시는 예스24 블로그에서 퍼왔습니다.

이홍군 박사님은 순회공연의 주관단체인 민족미학연구소의 채희완 부산대 교수님의 지인이십니다.

 

중국 순회공연에서는 갯돌에게 중국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주셨고 우리민족의 중국이민사와 세계와 통하는 철학 등을 이야기해주셨습니다.

 

특히 공연팀에게 웃음으로 활력소를 불어 넣어주시는 유머실력은 대단했습니다.

자니윤쇼를 뛰어넘는 재담과 익살은 힘든 여행의 고단함을 씻는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여기 선생님의 기행을 싣습니다. 

http://blog.yes24.com/document/5106477 복사 트위터 보내기


아침에 일찍 잠에서 깨었다. 젖혀진 커튼 사이로 보니 비가 내리고 있다. 처서(处暑)가 지났으니 가을이란 생각이 드는데 늦더위가 와 있다. 이 늦더위를 중국에서는 추로호(秋老虎)라 표현한다. 늙은 호랑이가 어슬렁거리며 다녀서 더위가 지속하는지 길게는 20일도 더 간다고 한다. 이렇게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더니 비가 온다. 옆에서 주무시던 선배도 일어나셨다. 더운 날씨에 3시간 이상의 먼 거리에 차를 타고 가서 몸으로 하는 공연을 했으니 몹시 피곤할 텐데 젊은 단원은 나이트 라이프를 즐긴 모양이다. 선배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금방 간다.

 

아침을 꼭 먹고 하루를 시작하는 나와는 달리 평소 선배는 아침을 거의 들지 않으신다고 한다. 혼자 호텔 6층에 있는 식당을 찾아 뷔페식 아침을 먹었다. 몇몇 단원이 아침을 먹으러 와서 인사를 하고 함께 아침을 먹게 된다. 중국에 처음 오는 단원이 꽤 있다. 이것저것 물어온다. 중국에서 생활하며 얻은 경험으로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일부 단원은 연변조선족자치주의 간판에 한글과 한자가 병기되어 있어 국경을 달리한 외국에 온 것 같지가 않다고 한다. 그만큼 연변조선족자치주는 중국 속의 한국인 셈이다.

 

연변조선족자치주는 延吉市(연길시) 인구 50만,图们市(도문시) 인구 13만, 敦化市(돈화시) 인구 48만,龙井市(용정시) 인구 18만,珲春市(훈춘시) 인구 22만,和龙市(화룡시) 인구 20만,汪清县(왕청현) 인구 24만,安图县(안도현) 인구 22만으로 2010년 말 통계에 나타나 있다. 전체인구는 218.7만인데 그중 조선족은 80.6만 명으로 약 36.8%라고 한다. 전체 6개 시와 2개 현 중 이번 여행에서 가보게 된 도시는 오늘 가는 용정시와 백두산을 가려고 가서 하루 묵게 되는 안도현 이도백하(二道白河)를 합하면 3개(돈화시, 화룡시, 왕청현) 행정구역을 제외하곤 다 가 보는 셈이다.

 

오늘 방문하는 용정시는 애국시인으로 일본의 감옥에서 해방을 앞두고 살해된 윤동주 시인의 비와 기념관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특히 이번 중국 연변지역 전통예술 공연팀이 윤동주 시인의 생가 앞마당에서 마을 주민을 관객으로 단독공연을 하게 된다니 나 또한 가슴이 설렌다. 그간 10년 동안 70여 차례의 공연을 동북 3성 각지에서 해 왔다고 한다. 이번 윤동주 시인의 생가 앞마당에서의 공연이야말로 모두에게 더 큰 의미가 있다. 어렵게만 여겨졌던 윤동주 시인의 생가 앞마당에서의 공연을 추진해 온 선배에겐 특히 더 큰 감회가 있을 것 같다.

 

새벽에 내리던 비가 빗줄기가 약해진 채 오락가락한다. 용정시는 연길시에서 비교적 가까운 거리로 약 23킬로 떨어져 있다. 방향으로는 연길시의 남서쪽에 있다. 공연 시각이 오후로 잡혀 있어 용정시 대성학교에 있는 윤동주 시인의 기념비와 기념관 관람과 옆에 있는 독립운동가 겸 교육자이신 이상설 선생 기념관을 관람하고 용정(龙井)이란 이름이 유래한 공원을 들리고 나서 공연을 하는 명동마을로 향한다고 한다. 도로를 확장하고 재포장하는 공사를 하고 있다. 또 속도제한을 심하게 해서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려 용정시에 있는 대성학교에 도착했다.

 

윤동주 시비에는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8)의 서시가 돌에 새겨져 있다. 우리 일행보다 조금 먼저 도착한 한국에서 온 단체 여행객 중 한 명이 크게 이 시를 낭독한다. 이 서시는 유고시집의 전체적인 내용과 윤동주의 생애를 암시하고 상징한다. 언제 읽어 보아도 감흥을 느끼게 되는 서정시다. 아마 한국에서 교육받은 대부분 사람이 이 시를 감상해 봤을 것이다.

 

序诗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一九四一. 十一. 二十

 

건물의 아치형 입구 위에 私立 大成中学校(사립 대성중학교)란 학교 이름이 돌에 새겨져 있고 그 밑에는 용정시 청소년 애국주의교육기지(龙井市爱国主义教育基地)라 한글과 한자로 새겨 놓은 곳을 통과하여 2층에 마련한 기념관을 관람했다. 안내요원이 배치되어 설명해 준다. 벽면에 붙어 있는 사진과 글을 지나가며 설명해 주는 안내원의 우리말 발음에서 강한 악센트가 느껴진다. 한국의 방송에서도 60, 70년대엔 이처럼 강한 억양을 느낄 수 있었는데 이젠 억양은 거의 사라진 것 같다. 한복을 입고 억양을 섞어 설명해 주니 옛날로 돌아간 기분이다.

 

설명을 잘 듣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윤동주 교실이라는 것을 해 놓았다. 용정에는 많은 학교가 설립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 학교들이 합병되어 옛날의 학교명은 없어지고 하나가 되어 있다. 윤동주 시인이 다녔던 학교인 은진중학교도 지금은 그 학교명으론 졸업생이 배출하지 않는다. 이들 학교의 합병 역사를 보니 복잡하다. 사립용정(私立龙井)이란 말이 앞에 붙어 있고 은진중학교(恩真中学校, 영신중학교(永新中学校), 동흥중학교(东兴中学校), 대성중학교(大成中学校),광명여자중학교(光明女子中学校), 명신여자중학교(明信女子中学校)의 6개 학교가 현재는 용정중학교(龙井中学校)란 교명을 갖게 된 것을 알 수 있다.

 

고맙게도 용정시 문화원 원장이 호텔에서 출발할 때부터 줄곧 안내해 주었다. 작곡가이기도 하다는 용정시 문화원장으로부터 직접 용정(龙井)이란 도시 이름의 유래, 윤동주 시인, 일송정, 선구자 노래에 대한 고사(故事)에 대해 비교적 자세한 설명을 듣게 된다. 학창 시절 유신반대데모를 하며 불렀던 선구자 노래의 가사에 나오는 용두레와 우물도 방문했다. 그리고 대중가요로 많은 사람이 아직도 애창하는 김정구의 눈물 젖은 두만강 노래가 처음 무대에 올라 불렸던 곳이 용정이라고 하는 설명과 함께 지금은 없어져 버린 극장이 있던 자리도 지나가게 되었다.

 

용정시 문화원장의 설명 중에 선구자를 작곡한 조두남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을 때엔 그의 변절 행위에 어이가 없기도 했다. 먼지와도 같은 인간이기에 저지르게 되는 잘못이고,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세상이 바뀌고 나니 그런 행위가 떳떳하지 않았기에 감추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도 선구자란 노래는 지금도 많은 한국인의 애창곡이다. 작사자인 윤해영이 살던 집터는 거룡우호공원이 되어 있다. 바로 그 앞에 용정이란 이름의 유래가 발생한 우물이 있다. 한참 설명을 잘 들었다.

 

용정시와 한국의 거제시가 자매결연을 하며 만들어진 공원이라 거룡우호공원이라 이름이 지어졌다는 이야기고 공원의 이름이 지어지게 연유도 설명을 들었다. 큰 용을 상징해서 붙여 놓은 이름인 줄 알았더니 두 시의 앞글자를 따서 지어 놓은 것이다. 용정이란 이름도 물을 찾아 떠난 사람이 찾아다니다가 지쳐 쓰러진 자리에서 꾼 꿈에 용이 나타나 알려주었다고 한다. 지금은 우물로서의 기능은 끝이 났지만, 전설이 된 이 우물터엔 관광객의 발길이 계속된다.

 

제국주의 망령에 휩싸여서 이웃나라를 침략한 일본이다. 많은 사람이 일본인의 손에 죽고 고통을 받았다. 식민지가 된 조국을 떠나 이주한 한민족이 특히 용정에 많이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많은 학교를 세워 후손을 교육해 독립을 쟁취하는데 앞장 서줄 것을 바랐다. 그래서 용정을 방문하는 것 자체가 애국이 무엇인가를 느끼고 가게 된다. 이제 독립을 쟁취했으니 이곳에서 항일을 넘어서 극일의 교훈을 얻게 되면 좋겠다.

 

용정시 문화원장의 안내는 장소를 옮겨 이어졌다. 지금은 용정시 인민정부 건물로 사용되는 일본식 건물에 와서는 이 일대의 넓은 부지를 일본이 확보한 뒷이야기도 들려준다. 소가죽 한 장으로 기만한 이야기다. 그러니까 일본인은 소가죽 한 장만큼의 땅만 주면 된다고 해서 허락을 받아 놓고는 소가죽을 가위로 아주 가늘게 잘라 연결하여 아주 넓은 땅을 확보했다고 한다. 교활한 일본의 기만과 잔재주가 얼마나 극심했었는가를 나타내 준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 다시는 교활한 일본인에게 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교훈이 섞여 있는 이야기다.

 

단체 관광객이 많이 들려 점심을 먹고 가는 식당에서 점심은 상추에 돼지고기를 올려놓고 쌈을 싸서 잘 먹었다. 아직도 비가 오락가락한다. 잠시 후면 공연을 해야 하는데 걱정이 된다. 하지만, 비가 와도 공연은 한다고 한다. 어렵게 주선이 된 윤동주 시인의 생가 앞마당에서의 공연을 하려고 점심을 먹자 버스를 타고 시내에서 약 15킬로 떨어진 명동마을(明东村)으로 이동했다. 가보지도 않고 돌아 나올 수가 없다며 버스기사가 생가 앞까지 갈 수 없다고 한다. 공연을 위해 한국에서 갖고 온 짐이 꽤 되어 부탁해 보지만 버스기사는 완강히 거절을 한다.

 

차에서 내려 생가 쪽으로 가보니 차를 돌릴만한 공터가 있는데도 그런다. 어쩔 수 없이 단원의 힘으로 꽤 되는 짐을 옮겨야 했다. 짐을 옮기자 생가 앞마당에 비가 와서 고여 있는 물에 부근의 흙을 퍼다가 덮는 작업도 했다. 비가 계속 오락가락한다. 비가 퍼부어도 공연하겠다는 것이 단원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모두가 총연출인 선배의 뜻을 잘 따라주어 고맙기까지 하다.

 

윤동주 시인의 생가에 들어서자 윤동주 서거 66주기 추모를 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선배가 대표로 술을 따라 올리고 함께 추모의 절을 올렸다. 선배와 함께 마을을 안쪽으로 들어가 보았다. 한국식 기와집 형태의 모양으로 새로 짓는 건물이 있다. 건물은 다 지어진 것 같고 내부 공사를 하는 것 같다. 지나치는데 명동마을의 기념실을 막 다 장식했다며 들어와 봐도 좋다고 하여서 들어가 보았다. 윤동주 시인과 윤동주 시인의 외삼촌인 김약연 목사를 주축으로 하여 명동마을의 역사를 사진에 설명을 붙여 전시해 놓았다. 이 건물이 방의 이름을 학교인지 ‘명동 학교 역사실’이라 해 놓았다.

 

지금은 중국 영토가 되어 있지만, 명동마을에 사는 사람은 대부분 조선족 동포이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의 농촌 모습과 다를 바가 없게 느껴진다. 논과 밭으로 일을 나갔는지 마을은 텅 빈 것 같다. 이 마을도 젊은 사람은 거의 도시로 나가고 아니 먹은 사람이 마을에 남아 농사를 짓고 있다. 그러니까 고령자만 사는 마을이 되어 있다. 마을을 한 바퀴 돌아와 지붕 위에 십자가를 올려놓은 건물로 들어가 보았다. 윤동주 시인의 외삼촌인 김약연(金躍淵)이 세운 명동 교회라고 한다. 지금은 윤동주 생가의 기념관이 되어 있다.

 

준비가 되자 길놀이부터 시작한다. 오늘은 한국의 부산, 마산, 광주, 전주 등에서 온 예능전문인으로 구성한 전통예술단이 단독공연을 펼치기에 더 기대를 하게 된다. 길놀이를 떠나가자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한다. 앞마당이 다 정리되자 한국에서 준비해 온 현수막이 걸린다. 오락가락하던 비가 공연이 시작되자 멎었다. 이 무슨 조화인가. 마치 하늘도 윤동주 생가 앞마당에서의 공연을 축하해 주는 것 같다. 마을 사람이 생가의 마루에 꽉 들어찼다. 길놀이를 떠났던 단원이 모두 돌아오자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되었다.

 

아리랑 처녀가 창을 부르며 관중과 호흡을 맞추어 합창해 가자 더욱 마을 사람과 가까워진 느낌이다. 봉산탈춤 목중춤이 이어진다. 비나리 사설 굿과 장구 연주, 그리고 마당극 품바가 숨 돌릴 틈을 주지 않고 계속된다. 공연이 진행되고 있는데 윤동주 생가를 구경하러 온 한국에서 온 단체 관광객이 도착했다. 이들은 주저함도 없이 공연에 참여한다. 보기 어려운 좋은 공연이란 생각에서인지 다음 일정이 있을 터인데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추임새를 연창하며 흥겹게 논다. 한국의 전통예술을 국경 너머 이웃 나라 중국에서 보게 된다며 사진도 열심히 찍는다.

 

마당극 품바품바를 공연할 때는 선뜻 기부금도 내 놓는다. 목포에서 온 극단 갯돌 출연자의 열연에 박수가 터지고 관중과 연기자가 한 덩이가 된다. 진짜 각설이가 된 듯 참여한 관중도 자연스럽게 감정이입이 되어 신명이 나는 모양이다. 이렇듯 관중의 참여가 두드러져 마당극의 현장성이 여실히 드러난 공연이다. 마당극 ‘남도 천지 밥’도 공연되었다. 전통 농경시대의 공동체 문화를 소재로 하여 만들어진 마당극이다. 역동적인 큰 동작의 군무가 인상적이다. 일 년 농사 과정이 이야기 형식으로 진행된다. 따뜻한 정이 넘치는 두레 공동체가 해 왔던 일이 현장감 있는 마당극이 되어 공연되어 감동을 주었다.

 

관중과 출연진 모두가 한데 어울려 우리 전통 삼진박 장단에 맞추어 덩실거리며 춤을 추었다. 한 핏줄로 연결된 한민족이기에 저절로 어깨춤을 추며 동참이 된다. 바로 이것이다. 우리 전통문화가 우리 민족을 하나로 묶어주는 현장에 있게 되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매년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한민족의 동질성 회복을 위한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직접 보게 된 것이다. 선배에 대한 존경심이 저절로 생긴다. 정말 수고 많으셨다는 말씀밖에 드릴 말이 없다.

 

공연이 끝나자 허리가 구부러진 명동마을의 조선족 동포 할머니가 답례라며 창을 불러주었다. 노래를 들으며 모두가 숙연해진다. 할머니의 창은 잘 부르고 못 부르고를 떠나 우리의 심금을 울려준다. 그러면서 오늘은 한민족의 동질성이 회복되는 날이라고 해도 관언이 아닌 것 같다. 관중의 표정을 살펴보니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다. 고향을 떠나 이역 땅에서 힘든 농사일을 하며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온 2, 3세들이다.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공연 중에는 비가 내리지 않다가 공연이 끝나자마자 장대비가 쏟아진다. 하늘도 축복해 준 공연이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 공연을 보고 마을 사람 모두가 감동했다고 한다. 마을의 전 현직 촌장이 단원 모두를 개 한 마리를 잡아 저녁을 먹자고 초대하였다. 촌장의 집으로 가는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다. 귀중한 손님이 방문하면 이 마을에서는 잘 기른 개를 잡아 대접했다고 한다.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저녁상이 마련되었다. 개고기를 즐겨 먹지 않는데 개장 탕의 맛을 보니 맛이 기막히게 좋다. 촌장과 이번 방문단의 단장인 선배의 인사말이 끝나자 백주를 잔에 채워 건배했다. 촌장이 중국 한족이라고 하는데 우리 말을 아주 잘해서 모두가 놀라게 된다. 이 마을에서 직접 길러 수확한 옥수수, 감자는 물론 상에 올린 김치도 비료와 농약을 전혀 주지 않은 배추로 담가 건강에 좋은 녹색 식품이라고 한다.

 

공연이 훌륭했으니 뒤풀이도 당연히 훌륭해진다. 몇 순배 술잔의 술이 비워지더니 이어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선구자 노래도 조두남 작곡이 아닌 멜로디로 불러주어 듣게 되었다. 용정시 문화원장은 자신이 작곡한 동요를 유머가 넘치는 가사를 붙여 불러주어 모두에게 웃음을 선사해 주었다. 감동의 공연을 보고나서 동포애를 느끼며 명동마을 분들과 함께 아주 기분 좋은 저녁 시간을 갖게 된 날이다. (2011년 9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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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가 오락가락 하는 궂은 날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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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정시 문화원장의 설명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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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립 대성중학교 건물은 이제 용정시 청소년 애국주의 교육기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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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층에 용정중학교 역사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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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동주 시인, 문익환 목사, 나운규 등과 같은 인물이 배출된 학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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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치된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며 관람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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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개 사립학교가 합병되어 현재의 용정중학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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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립운동가 겸 교육자인 이상설 선생의 기념관이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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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동주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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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제시와 용정시가 자매결연 도시가 되면서 만들어 놓은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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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정이란 도시의 이름이 탄생하게 한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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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석에 용두레 우물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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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이 지어 놓은 건물은 용정시 인민정부 청사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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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동주 생가는 명동마을(明东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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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동주 시인 생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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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동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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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동주 서거 66주기 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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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동주 생가를 출발하는 길놀이 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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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스모스가 피어있는 마을의 큰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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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모 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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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리랑 처녀의 민요 아리랑 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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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산탈춤 8목중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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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포에서 온 극단 갯돌의 마당극 품바품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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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자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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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극단 갯돌의 마당극 남도천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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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중과 출연자가 함께 어울려 휘날레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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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의 가락과 장단은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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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동 마을 할머니가 답례라며 노래를 불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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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동촌 촌장에게 마당극 품바 공연중 걷힌 돈을 마을 기금으로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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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를 한마리 잡아 수고에 답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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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동 마을의 농작물로 차려진 밥상에 앉아 우의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