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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군 님의 블로그에서 퍼옴> 갯돌 중국동북3성 한국전통예술순회공연 -여섯째날

극단 갯돌 2011. 9. 14. 17:50

2011년 중국 연변지역 전통예술 공연 참관기 - 여섯째 날 | 여행의 추억(외국) 2011-09-12 13:19
***이 글은 중국하얼빈에서 사시는 공룡박사 이홍군 선생님께서 운영하시는 예스24 블로그에서 퍼왔습니다.

이홍군 박사님은 순회공연의 주관단체인 민족미학연구소의 채희완 부산대 교수님의 지인이십니다.

 

중국 순회공연에서는 갯돌에게 중국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주셨고 우리민족의 중국이민사와 세계와 통하는 철학 등을 이야기해주셨습니다.

 

특히 공연팀에게 웃음으로 활력소를 불어 넣어주시는 유머실력은 대단했습니다.

자니윤쇼를 뛰어넘는 재담과 익살은 힘든 여행의 고단함을 씻는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여기 선생님의 기행을 싣습니다.    

http://blog.yes24.com/document/5121458 복사 트위터 보내기

흔들리는 기차의 침대칸은 마치 요람을 탄 것 같다. 시끄럽게 떠들고 코 고는 소리만 좀 들리지 않으면 잠을 잘 잘 수 있을 것 같다. 6명이 한쪽에 3명씩 터져 있는 침대칸에서 잠을 자며 가게 된다. 경와(硬卧 ying wo)라 하는 이 2등 침대칸이 경제적이기도 해서 가장 인기가 있다. 10시간 이상 기차를 타고 가야 하니 더욱더 그렇다. 아내의 사촌 동생이 힘들게 구해준 침대칸의 위치는 중포(中铺)라 3층 가운데에 있다. 중국인들이 하는 말로 잠을 자고 가기엔 가장 좋다고 하는 층이다.

 

무엇인가의 충격에 열차가 굉음을 내고 덜커덩거리며 서는 바람에 잠에서 깼다. 열차 안은 아직도 어두 컴컴하다. 잠을 잘 자도록 커튼을 열차 승무원이 쳐 놓았다. 일찍 일어난 사람이 커튼을 젖히고 창가에 앉아 밖을 내다보고 있다. 밖은 밝아오기 시작한다. 시계를 보니 오전 5시가 다되어 간다. 양치와 세수를 하고 화장실을 다녀왔다. 그리고 열차 칸을 지나 선배가 있는 침대칸으로 가 보았다. 어제저녁에는 왕래하는 열차 칸의 문을 잠가 놓았는데 아침에는 열어 놓아 갈 수가 있었다.

 

선배도 잠에서 깨어 일어나 있다. 어제까지 한방에서 잠을 자다가 서로 열차의 칸을 달리해 떨어져 잠을 자고 만나니 반갑기까지 하다. 선배와 같은 열차 칸에 탄 일행도 모인다. 잠시 하얼빈에서의 일정을 협의하였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하얼빈역의 역사적 저격장소에 가 보는 것이다. 그리고 안중근 의사 기념실, 제731부대 등과 하얼빈의 중심가 러시아인이 바로크 양식으로 조성해 놓은 유명한 중앙대가와 성소피아 성당, 그리고 송화강 가는 아무리 하루의 짧은 일정이지만 가봐야 하는 곳이다.

 

아내가 친구를 통해 미리 예약해 놓은 호텔이 시내 한복판 조린 공원 부근에 있기에 이렇게 시간이 없을 때는 많은 도움을 받게 된다. 꼭 가 봐야 하는 명소를 차를 타고 오가지 않고 도보로 다 가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좋다. 인구 1,000만을 돌파한 대도시인 하얼빈이라 그만큼 차도 많아 도심은 주차난이 심해서 차를 갖고 시내에 나가는 것이 더 불편하기만 하다. 내년 초에 개통하기에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지하철 공사 때문에 지하철 공사가 끝나기 전까지는 더 혼잡하기 이룰 데 없기도 하다.

 

하얼빈역의 혼잡 또한 대단하다. 우리가 기차에서 내릴 시각엔 더 혼잡하다. 기차를 타고 온 사람, 탈 사람, 마중나온 사람이 뒤섞이는 출구는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다. 역 앞의 광장이 다 사람으로 채워져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인구 60만의 연길시에 있는 연길역과는 비교되지 않는다. 점점 더 늘어나는 교통수요 때문에 지금의 청사는 철거하고 다시 짓는다는 계획이 발표되었다. 새로 크게 지은 하얼빈서 역이 개통하게 된다.

 

잠시 선배의 침대칸에 가 있는 동안 객차승무원이 보관하고 있던 기차표를 카드와 교환하여 갖고 갔다. 옆 침대칸을 타고 온 아가씨가 객차승무원에게 가 보라고 일러준다. 기차표가 없으면 밖으로 나갈 때 문제가 된다. 객차승무원을 찾아갔더니 자리에 없어 한참 기다려 카드와 기차표를 교환하니 기차는 하얼빈역의 플랫폼으로 들어선다. 짐을 챙겨 내릴 준비를 하고 열차가 멎자마자 내렸다. 기차가 도착하기 전에 서로 연락을 취하기로 해서 휴대전화기를 꺼내 전화를 하니 계속 불통이다. 비를 맞아 휴대전화기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수차례 전화를 걸다 포기를 했다.

 

마중을 나와 있을 여행안내원과 아내와 연락이 되질 않아 걱정하며 황급히 기차에서 내려 선배가 탄 열차 칸으로 가니 아내가 플랫폼에 와서 많은 짐을 갖고 내린 일행과 함께 포터와 실랑이를 하고 있다. 플랫폼이 길기도 하지만 플랫폼에서 버스가 대기하는 지점까지가 제법 멀어서 포터에 짐을 맡기는 것이 좋겠다는 결정을 내리고 가격을 협상하여 포터에 짐을 옮기라고 한다. 아내는 짐을 잃어버리면 안 되겠기에 신경을 많이 쓴다. 여행사 안내원은 나이 어린 대학생으로 경험이 없으니 큰 도움이 되질 않는다.

 

혼잡하기 그지없는 하얼빈역의 출구를 빠져나오는데 포터들이 짐은 출구까지만 운반해 준다며 돈을 더 달라고 생떼를 부린다. 아내가 펄쩍 뛰며 이들과 말싸움을 한다. 옛날 한국에서 이사하려면 이삿짐을 옮겨주는 인부와 이런 실랑이를 많이 하게 되었는데 이와 같은 일이 이곳 중국에서는 비일비재하다.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이들에겐 돈 벌 기회가 찾아온 것이라 어떻게 하던 돈을 더 받아내려고 하는 것이다. 아내의 목청이 높아진다. 주차장에 대기시켜 놓아야 할 버스는 주차장에 없고 하얼빈역 앞의 복잡한 도로변에 정차하고 있다.

 

분명히 주차장에 버스를 대기시켜달라고 여행 안내원과 통화를 할 때 부탁을 했건만 이렇게 약속을 어기니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다. 주차장에 버스를 대기시켜 놓고 아침을 먹고 안중근 의사 저격장소를 찾아보려 한 것인데 이렇게 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버스 운전기사가 주차할 수 없는 지역이라며 딱지를 받게 된다고 여행 안내원을 겁을 주니 여행 안내원이 어쩔 줄 몰라 한다. 아직도 체계가 잡혀 있지 않은 관광안내를 하고 있다. 다 돈 때문에 그러는 것이란 생각을 하니 여행사에 버스를 전세하게 한 결과 골탕을 먹게 되는 것 같다.

 

일행을 데리고 일단 아침을 먹으러 갔다. 하얼빈 역 앞에 있는 호텔에 있는 식당인데 중국식 뷔페식으로 아침을 저렴한 가격에 제공한다. 교통질서란 찾아볼 수 없는 무법천지 같은 중국의 대도시를 방문하게 되는 일행은 길을 건널 때 건널목을 이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사방에서 비키라고 울려대는 클랙슨 소리에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다. 교통경찰과 같은 복장을 한 사람이 있긴 하지만 모두가 교통법규를 어기고 있으니 팔짱만 끼고 있다. 큰 소리로 안전에 유의를 부탁하면서 빠른 행동을 부탁하며 길을 건너 식당에 도착했다.

 

아침을 먹고 대기시켜 놓은 버스를 타고 호텔로 향했다. 일단 호텔에 체크인하고 약간의 휴식을 취한 다음 일정에 돌입해야 한다. 체크인을 하고 전자카드를 받아 호텔방에 들어오니 나마저 정신이 다 없다. 하루밖에 없는 일정이라 한 곳이라도 더 보고 가게 하려는 마음에 내 마음이 급해지는 것 같다. 여행사 안내원과 잠시 의견을 교환하니 731부대 가기 전에 시내에 있는 안중근 의사 기념실을 들리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는데 뭐라 할 수가 없다. 당초에 잡아 놓은 일정을 바꿔 놓아 이것이 화근이 되는 일이 발생하였다.

 

안중근 의사 기념실은 할빈시 조선민족예술관이란 곳에 마련되어 있다. 하얼빈에서 우리 한민족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 의사의 저격은 우리나라 땅이 아닌 중국에서 일어난 거사이기에 우리 마음과 같이 이 역사적 사건을 기념해 놓기가 나쁜 것이 사실이다. 2006년 전에는 그나마 이런 기념실조차 없었던 하얼빈이라 비록 조선민족예술관의 한쪽 편에 마련해 놓은 전시지만 뜻이 있는 사람은 찾게 되고 안중근 의사의 애국독립사상에 경의를 표하고 간다.

 

안중근 의사 기념실을 방문하고 나서 731부대에 도착하니 이곳 전시관은 11시 30분부터 오후 1시 30분까지 점심때로 전시관을 닫아 버린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안중근 기념실을 관람하고 버스를 타고 이동을 해 도착한 시각이 11시 30분으로 이 오후 휴식시간에 걸려 731부대 전시관은 2시간 동안 문을 열지 않는다. 무슨 전시관의 운영을 점심때라고 문을 닫아걸어 놓는 경우가 다 있나 하는 생각이 드니 어처구니가 없다. 여행 안내원도 그 잘난 버스기사도 몰랐다고 하니 할 말이 없다.

 

버스 기사와 실랑이를 하다 이런 정황이면 버스를 돌려보내고 호텔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곳을 관광하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을 선배가 하고는 한식으로 예약해 놓은 점심을 먹지 말고 호텔로 돌아가 저녁 예약을 해 놓은 곳에서 점심을 먹고 자유시간을 갖도록 하자고 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내린 최선의 선택이다. 툴툴대는 버스기사도 문제이지만 차량을 제공한 여행사는 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오히려 워낙 빡빡한 일정을 숨돌릴 새 없이 다닌 여행이라 자유시간을 갖게 된 것이 더 나은 것 같다.

 

아내에게 전화하여 호텔 부근에 아내의 친구에게 부탁하여 마련해 놓은 음식점에 저녁 대신 점심을 먹으러 가겠다고 하고, 점심을 먹기로 한 조선족 동포가 하는 한식당에서의 점심은 취소를 시켜버렸다. 호텔로 돌아와 아내를 만나 단원 모두 동북 음식 메뉴를 중심으로 중국식 방법에 따라 22명이 한 테이블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아내에게 음식주문을 부탁하니 아내가 한국인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기름기가 적은 동북 음식을 위주로 주문해 주었다. 대형 원형 식탁에서 22명이 가운데 돌아가는 판에 얹어 놓은 음식을 갖다 먹어야 해서 이런 식사법에 익숙지 않은 것 같아 중국식 식사법도 알려주었다.

 

무엇보다 한국인이 잘 먹는 것은 우리가 한국의 중국식 음식점에서 접하게 되는 탕수육이라고 하는 음식이란 것을 잘 아는 아내가 탕수육을 시켜주었는데 이곳에서는 이 음식의 이름을 탕수육이라 하지 않고 과포육(锅包肉)라 한다는 것도 일러주었다. 해선(海鲜) 요리 전문집이라 상어지느러미 수프도 나왔다. 치아 문제로 고기류를 잘 드시지 않는 선배는 수프를 아주 잘 드신다. 여러 가지 요리를 시켜 함께 다양한 맛을 음미하며 먹는 중국인들의 식습관은 어찌 보면 너무 많이 시켜 낭비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곳의 관습이 남은 음식은 싸서 가서 누군가가 다음에 먹기 때문에 낭비를 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여러 가지 음식을 시켜 골고루 맛을 볼 수 있으니 좋은 면도 많다.

 

아내가 점심 먹은 값을 다 계산하고 자신의 볼일을 보러 갔는데 일행이 또 돈을 지급했다. 습기 때문에 작동이 되지 않았던 휴대전화기를 수리해 갖다 준 아내가 전화를 걸어왔다. 음식값을 다 지급하고 갔으니 또 내지 말라는 전화다. 전화를 받자 일행 중 자금을 관리하는 분이 급히 계산대에 가서 음식값을 돌려받는 해프닝이 일어났다. 음식점 회계원이 교대해서 잘 모르고 돈을 받았다는 설명이다. 서로 모르고 지나갔으면 두 번 돈을 지급할 뻔 한 일이 발생한 것인데 이런 일이 중국에선 자주 일어나기에 아내가 전화를 걸어 준 것이다.

 

점심을 먹고 단원은 자유시간을 갖게 되었다. 호텔 부근이 하얼빈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명소이기 때문에 구태여 여행 안내원의 안내가 필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연변 조선족 자치주와는 달리 한국어가 전혀 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모든 시내의 간판도 중국의 한자, 그것도 간자체로 쓰여 있기 때문에 길을 잃어 버리는 일도 생길 것 같아 송화강 가까지는 함께 행동을 하고 송화강 가에서 여행 안내원의 안내를 받을 사람은 받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나와 같이 움직이기로 했다.

 

선배와 몇 명의 일행이 송화강 가에 남게 되었다. 아주 좋은 가을 날씨다. 춥지도 덥지도 않다. 이렇게 좋은 가을 날씨가 짤지만 며칠 계속된다. 마침 가장 기후가 좋을 때다. 방홍기념탑을 지나 송화강 가의 둑에 앉아 송화강과 강 건너 태양도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간을 보니 송화강을 건너서 태양도를 다녀와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화강을 건너다니는 배를 타 보는 것도 좋은 풍류가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에 배표를 사서 선배와 단원 몇 사람과 함께 송화강을 건넜다. 태양도는 아주 잘 가꾸어진 큰 공원이다. 선배는 잔디에 누어 푸르고 맑은 하늘을 쳐다보신다.

 

돌아오는 표까지 미리 샀다. 태양도에 잠시 머물고서 다시 방홍기념탑으로 돌아오는 배를 탔다. 헤어진 일행과 성소피아 성당에서 오후 6시에 만나기로 했기에 그 시간을 계산해서 움직였다. 6시가 채 안 되어 성소피아 성당에 도착해 보니 여행 안내원을 따라갔던 일행이 속속 도착한다. 하얼빈의 랜드마크라고 하는 성소피아 사원을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었다. 성소피아 성당은 러시아의 모스크바에 있는 에 있는 Saint Basil's Cathedral 성당을 본떠 지었다고 한다. 지금은 교회당으로 사용하지 않고 하얼빈시 건축협회에서 전시관을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성소피아 성당의 광장을 이제는 건축예술광장이라 부른다.

 

오후 4시 반이 되면 거의 모든 상가가 문을 닫는 하얼빈이다. 중국에 처음 온 단원들에겐 물건을 팔아 돈을 벌어야 하는 상점이 오후 4시 반이면 문을 닫는다는 것이 잘 믿기지 않는 것 같다. 어찌 보면 물건을 사고파는데 한국과는 전혀 다른 시간대를 사는 셈이다. 오버타임을 하지 않고 법정 근로시간인 8시간 근무를 정확히 지키는 것도 사뭇 다를 것이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공산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은 당연히 이렇게 일하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물론 상점에 따라서 24시간을 오픈해 놓을 수도 있다. 일이란 것이 매일 반복적으로 해야 하기에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오히려 이 방법이 맞는 것 같다.

 

저녁은 윈난성 쌀국수라고 하는 미선(米线)으로 먹는 것이 좋을 듯하여 제안하니 지난해 말 하얼빈의 우리 집을 찾아 준 선배는 이 쌀국수가 가장 기억에 남는 맛있는 음식이었다며 적극 찬성을 하신다. 쌀국수집이 꽤 많지만, 중앙대가에 있는 윈난성 쌀국수집은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좋아서 우리 내외가 자주 찾는 집이다. 또 한국에서 찾아오는 손님이 있으면 함께 가서 별미로 먹는 집이기도 하다.

 

성소피아 성당에서 윈난성 쌀국수집까지 주변을 구경하며 걸어갔다. 중화 바로크라 이름 붙여 놓은 러시아인이 바로크 양식으로 건축해 놓은 건물을 지나게 된다. 건물 대부분이 보호건축물로 보호를 받고 있다. 중앙대가의 차 없는 거리를 지나 윈난성 쌀국수집에 도착했다. 그렇게 크지 않은 음식점이다. 주인이 직접 음식을 조리하며 서비스를 한다. 인원수에 맞게 쌀국수를 주문했다. 베트남 쌀국수집이 한국에 있어 쌀국수를 먹어 보았다는 단원도 이 윈난성 쌀국수의 쫄깃한 국수와 매콤하고 진득한 육수의 맛을 보고는 맛있다고 한다.

 

이와 함께 부근에 있는 구멍가게에 가서 하얼빈의 교외 옥천(玉泉)에서 생산되는 52도짜리 백주(白酒)로 건배를 들었다. 모두 중국의 전통주인 백주(白酒)의 맛을 이번에 와서 잘 음미하고 가게 되는 것 같다. 백주는 흔히 고량을 원료로 만들어서 고량주라고 불리는데 한국의 소주보다 알코올 도수가 월등히 높은 증류 술이다. 보통 38도와 52도짜리 백주(白酒)가 생산된다. 백주의 종류도 엄청나게 많다. 가만 보면 지방마다 그 지방의 상표로 백주를 생산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저녁을 잘 먹고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중앙대가를 걷게 되었다. 여러 가지 색의 조명으로 거리는 아름답게 장식된다. 중앙대가는 오가는 많은 사람으로 넘친다. 거리의 빈터에서는 여럿이 함께 어울려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이런 모습을 보고 많은 중국에서 사는 사람은 많은 통제 속에 살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오히려 댄스, 앙가(秧歌)와 같이 여러 사람이 함께 음악에 맞추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놀이 활동이 가을과 같이 야외활동을 하기 좋은 계절에 거리에서 이루어진다.

 

내일이면 공식, 비공식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중국 여행의 마지막 밤이다. 하얼빈의 여름밤은 참 지내기가 좋다. 그래서 그런지 시내 곳곳에는 맥주광장이 생겨난다. 중국 최초의 맥주가 1900년에 하얼빈에서 생산되었기에 하얼빈은 중국 최초의 맥주를 생산했다는 자부심이 있는 도시다. 칭다오가 1903년 생산을 시작했으니 하얼빈보다 3년이 뒤처진다. 하얼빈 맥주의 질과 맛 또한 훌륭하다. 그래서 해마다 큰 맥주 잔치가 여름에 하얼빈에서 열린다.

 

중앙대가와 연결되는 거리에서도 맥주광장이 여러 개 있다. 그 중 마디얼 호텔 옆에 마련해 놓은 맥주광장은 다양한 안주까지 맛볼 수 있는 곳이라 내외국인에게 인기가 있다. 여행 안내원에게 이야기를 듣고 사전 답사를 한 단원이 하얼빈에서의 마지막 밤을 이곳 맥주광장에서 하자는 제의에 여러 단원이 함께 하얼빈 생맥주를 마셨다. 술통처럼 생긴 독특한 알루미늄 병에 생맥주가 담겨 판다. 2리터짜리 캔인데 한국에서는 이렇게 큰 캔에 넣어 파는 맥주가 없는 모양이다.

 

맥줏값은 2리터에 50위안인데 캔 값 50위안을 예치금으로 줘야 한다. 서로 돌아가며 맥주를 사와 마신다. 안주도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꽤 많다. 메뚜기와 번데기 안주는 그 크기가 너무 커서 징그럽기까지 하다. 기름에 튀긴 것을 맛보고는 맛있다며 맥주 안주로는 최고라며 먹는다. 외국에서 맞는 자유로운 저녁 시간을 단원은 만끽하는 것 같다. 맥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의형제도 맺게 된다. 그래서 나는 두 명의 좋은 동생을 갖게 되었다. 함께 여행을 하며 정도 많이 들었다. 또 생각하는 바가 비슷하니 쉽게 친해졌다. 그리고 여행의 마지막 날 저녁에 우리는 의형제를 맺은 것이다.

 

약간 선선한 기온을 느끼면서 맥주 파티가 끝이 났다. 하얼빈 맥주가 한국의 어느 맥주보다도 그 질과 맛이 훌륭하다는 이야기도 듣게 된다. 내수 판매로도 생산량이 부족해서 대폭 공장을 증설한다는 하얼빈 맥주다. 중국에 맥주 공장이 800개가 넘게 있다고 하는데 그중에서도 하얼빈 맥주는 최고의 대접을 받는다는 것도 일러주었다. 하얼빈 맥주 이외에도 하얼빈에서 생산되는 맥주는 설화(雪花),삼성(三星) 등의 맥주가 있는데 모두 질 좋은 물로 만들어 내서 좋은 맥주라는 평을 듣는다.

 

호텔로 돌아와 잠시 여행을 정리하는 미팅이 있었다. 모두가 돌아가며 이번 공연, 학술발표, 관광에 대한 소감을 이야기했다. 처음 중국에 와 본 단원과 여러 번 와 본 단원 모두 이번 여행으로 느낀 것이 참 많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 첫째가 한민족의 동질성 회복이란 면에서 우리의 전통예술을 직접 공연을 통해 보여주었다는 자긍심과 아울러 문화와 관습을 달리하는 이국에서 우리 한민족의 정체성에 대해 나름대로 느낀 바가 많았기에 한 사람 한 사람의 소감은 다 의미를 담고 있었다. (2011년 9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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