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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군 님의 블로그에서 퍼옴> 갯돌 중국동북3성 한국전통예술순회공연 -일곱째날

극단 갯돌 2011. 9. 14. 17:52

2011년 중국 연변지역 전통예술 공연 참관기 - 일곱째 날 | 여행의 추억(외국) 2011-09-12 16:21
***이 글은 중국하얼빈에서 사시는 공룡박사 이홍군 선생님께서 운영하시는 예스24 블로그에서 퍼왔습니다.

이홍군 박사님은 순회공연의 주관단체인 민족미학연구소의 채희완 부산대 교수님의 지인이십니다.

 

중국 순회공연에서는 갯돌에게 중국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주셨고 우리민족의 중국이민사와 세계와 통하는 철학 등을 이야기해주셨습니다.

 

특히 공연팀에게 웃음으로 활력소를 불어 넣어주시는 유머실력은 대단했습니다.

자니윤쇼를 뛰어넘는 재담과 익살은 힘든 여행의 고단함을 씻는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여기 선생님의 기행을 싣습니다.   

http://blog.yes24.com/document/5121977 복사 트위터 보내기

여행 소감을 돌아가며 이야기하느라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게 시간이 갔다. 하얼빈을 떠나 한국으로 귀국하는 날이다. 잠에서 깨어 시계를 보니 오전 6시를 가리킨다. 집을 떠나 일주일이 지나가기도 하고, 공연과 학술발표 등 준비에 신경을 써야 하는 공식일정을 마치고 벼락치기로 백두산 관광까지 마쳤다. 또 연길에서 밤새 완행열차를 타고 하얼빈까지 오셔서 휴식도 제대로 취하지 못하고 돌아다녔으니 피곤이 누적되었을 것 같다. 이번 한민족의 동질성 회복을 위한 2011년 중국 연변지역 전통예술 공연단을 이끌고 온 선배는 그래서 잠이 깊이 든 것 같다.

 

하지만, 하얼빈을 떠나기 전에 산책을 겸해 아침에 조린 공원을 들려 안중근 의사의 유묵 비도 볼 겸 호텔 부근에 있는 조린 공원을 다녀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선배를 깨웠다. 선배가 단원 모두의 방에 전화를 걸어 조린 공원 산책에 나설 사람은 자유롭게 나오라고 일찍부터 일어나 움직이는 젊은 단원에게 이야기하니 단원들이 모였다. 함께 조린 공원 산책에 나섰다. 아주 날씨가 맑은 상쾌한 아침이다. 하늘은 높고 푸르다. 조린 공원의 남서쪽에 있는 작은 연못가에 안중근 의사의 유묵 비가 세워져 있어 함께 가 본다.

 

안중근 의사의 유묵 비는 커다란 자연석에 앞뒤로 안중근 의사가 옥중에서 쓴 글씨가 새겨져 있다. 하나는 청초당(青草塘)이란 글씨이고 다른 하나는 연지(砚池)란 글씨다. 안중근 의사는 “내가 죽으면 뼈를 하얼빈 공원에 묻어두었다가 조국광복의 그날 고국으로 옮겨 묻으라.”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하지만, 일제는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뤼순 감옥의 죄수 묘역에 묻어버렸다. 그리고 일제는 안중근 의사의 정확한 매장지를 알려 주지 않아 그의 매장지를 찾을 수 없었다. 현재까지도 공식적으로는 유해가 묻힌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안중근 의사의 유언에 따라 비록 유해는 아니지만, 하얼빈의 공원 안의 연못가에 연못과 관련이 있는 안중근 의사가 쓴 글씨 청초당(青草塘)과 연지(砚池)란 두 단어를 돌에 새겨놓은 것을 보니 안중근 의사의 유언이 조금이나마 이루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올해(2011년)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 및 국내 봉환을 추진하는 비정부 민간단체 ‘안중근뼈대 찾기사업회’가 발족하여 안중근 의사의 유해찾기를 시도한다고 하니 기대가 크다.

 

선배와 함께 조린 공원 산책을 마치고 북쪽 출입구로 나와 남경 권당포(南京灌烫包)를 파는 간이음식점의 테이블에 앉아 화창한 가을 날씨를 만끽하며 계란탕(鸡蛋汤)과 함께 숙취를 풀었다. 어제 마지막 날이라고 술을 꽤 많이 마신 단원은 계란탕을 먹으며 속이 풀리는 것 같다고 한다. 처음 외국여행을 한 단원에겐 작은 물건이라도 가족에게 선물하려고 비교적 품질이 괜찮은 물건을 저렴하게 파는 曼哈顿(man ha dun)이란 백화점에 가보도록 했다.

 

오전 10시에 호텔을 출발하여 점심 겸 아침을 청나라 황궁 요리와 만주족 음식을 잘하는 대청화(大清华)란 음식점에서 이곳 동북지방의 관습대로 여행을 떠나며 먹고 가는 교자(饺子)와 몇 가지 청나라 요리를 시켜 먹었다. 두 명의 단원이 감사의 표시로 나와 아내를 위해 춤과 노래를 선사해 주었다. 아내에게 설명해 주자 정말 큰 영광이라고 하며 남편이 가장 사랑하며 좋아하는 선배가 하얼빈에 여러분과 함께 오셨는데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며 답사를 했다. 아내의 말을 통역하려니 쑥스러웠다. 하지만, 나와 아내의 진심이 단원 여러분에게 잘 전달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얼빈 국제공항으로 가는 고속도로가 얼마 전부터 개조공사를 시작해서 우회도로로 차량이 다녀야 한다. 우회도로가 막힐 때가 잦아 버스 운전기사는 물론 여행 안내원도 조바심을 낸다. 잠시라도 더 함께 있으면 좋겠지만 하는 수 없이 교자를 먹자마자 식당을 나섰다. 여행사에서 보낸 버스는 어제의 것이 아니다. 운전기사도 바뀌었다. 그런데 문제는 에어컨이 고장 난 버스가 제공되어 공항까지 가는데 편하지가 않을 것 같다. 아직도 세세한 부분에 서비스가 부족한 중국이다. 소비자보다 공급자가 더 큰소리를 치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도 하얼빈은 대도시라 잘 선택을 하면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데 여행사의 배려가 부족한 것 같다.

 

어쩔 수 없는 경우이긴 하겠지만, 옥의 티라고나 할까? 마지막 마무리가 좋지가 않아 마음이 쓰인다. 선배와 몇 분의 단원은 내 차로 공항으로 모시고 가는 것이 좋겠다는 아내의 말이 일리가 있어 그분들을 차로 모시고 공항으로 출발했다. 공항으로 가면서 보니 공항 고속도를 확장하는 공사를 하며 우회도로를 만들어 놓았는데 제대로 된 안내판 하나 없이 공사를 한다. 경제적으론 세계 2위의 대국이 되었다고 큰소리치지만 이런 것을 보면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공항에 도착하여 아쉬운 이별을 해야 했다. 헤어지지만 또 만날 것이란 믿음이 우리에겐 있다. 공연을 위한 장비를 갖고 와서 혹 중량이 초과하지는 않나 하는 염려가 되어 항공사에서 나와 있는 지점장에게 부탁했다. 일 인당 허용하는 짐의 무게가 20킬로라고 하는데 그 이상이 되면 추가요금을 내게 한다. 단체로 왔기에 전체 무게로는 괜찮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체크를 하는 융통성없는 중국인 여직원은 그런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며 이의를 제기한다. 하는 수 없이 지점장에게 다시 이야기를 해야 했다.

 

비행기를 타고 하는 여행은 이래저래 보안문제로 점점 더 몸수색을 하고 짐을 체크 당하기 일 수다. 그래서 국경을 달리한 남의 나라를 오가는 것이 예전보다 귀찮기만 하다. 게다가 서비스 정신면에서 개선이 잘 안 되어 후진국의 테를 벗어나지 못한 중국이다. 하지만, 점차 나아질 것이다. 서비스 분야에도 문호가 개방되고 경쟁을 하게 되면 한국과 마찬가지로 금방 개선이 될지도 모른다. 지나치게 많은 듯한 인구가 있는 중국이다. 그래서 중국을 여행할 때는 이해심이 많아야 하고 생각이 유연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아무쪼록 한국이 더 많은 발전을 해야겠다. 중국을 더 가깝게 하고 잘 보조를 맞추어가야 한다. 이미 중국은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경제적으로 우리와 가장 이해관계가 깊은 나라가 되었다. 한국을 100여 년 전에 스스로 또는 일제에 의해 고향을 떠나 만주땅에서 정착한 동포가 200 만에 이른다. 한국에선 이 조선족 동포를 두고 중국 국적이라고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중국인 취급을 하며 한민족이라는 점을 망각하고 유연하지 않고 텃세를 부리는 행정을 펼치는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인종차별이 아니라 혈통, 지역, 국가 차별이 일어나고 있다. 우습게도 일본처럼 조금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그런다면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한국인은 절대 그래서는 안 되겠다. 법도 정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우월한 인종으로 생각하며 만들어 놓은 일본제국주의자들이 만들어 놓은 외국인을 차별하는 외국인관리법을 그대로 채택해 적용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출입국관리소 실무과장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이것은 국제법과 인권을 우선으로 해서 맞게 과감히 정비를 해야 한다. 천부의 인권이 우선이고 남을 차별하며 자신은 대접받으려 하면 안 되지 않겠는가. 한국인과 조선족 동포의 마음가짐도 바뀌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더욱 한민족의 동질성이 회복되어야 한다. 예산이 충분하지 않은 민간단체에서 11년째 한민족 전통문화를 동북 3성의 조선족 동포에게 전달하는 공연을 해왔다. 어려운 환경에서 이렇게 성공적으로 해 오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학창시절부터 우리 한민족의 전통문화를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정리해서 보급하며 40년이 넘게 지켜오는 선배를 두었다는 것은 내게 큰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올해 처음 참여해 본 우리나라 전통예술 공연 참관은 내게 큰 기쁨을 주었다. 전문 예능 공연인답게 모두가 온 힘을 다해 열심히 해 준 공연을 참관하게 되었으니 그로부터 감동도 많이 받게 되었다. 선배를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성공적인 여행을 무사히 끝내고 돌아가는 모습을 보니 더욱 고마운 마음이 든다.

 

아내가 한민족 전통문화를 중국 땅에서 보여주고 가는 선배와 단원 모두는 우리나라의 민간문화외교사절이라고 한다. 정말 맞는 말로 동감을 한다. 국가에서도 하지 못하는 일을 성숙한 자세로 자체의 힘으로 해 나가고 있으니 입으로만 애국을 떠드는 부류와는 정말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을 쓰고 있는데 한국에서 전화를 받게 되었다. 함께 여행하며 찍은 사진을 압축해서 보내준다고 한다. 생각이 부족해 중요한 장면을 찍어 놓지 못했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사진 중에는 중국 하얼빈 태평국제공항을 떠나 한국 인천국제공항에 무사히 잘 도착하여 전국 각지로 뿔뿔히 흩어지는 단원과 함께 치룬 해단식 장면 사진이 들어 있어 반갑게 보게 된다. (2011년 9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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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중근 의사 유묵비가 있는 조린공원 연못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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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초당(青草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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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지(砚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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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 명의 단원이 나와 아내에게 감사의 춤과 노래를 연기해 주어 영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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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일주일간을 여행한 선배와 단원과 함께 하얼빈 국제공항 출국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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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인천국제공항에서 간단한 해단식을 하고 전국 각지의 보금자리로 헤어졌다는 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