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돌 소식/관극후기

갯돌 창작마당극 2013 홍어장수 문순득 표류기 관람후기-전남발전연구원 김준박사

극단 갯돌 2014. 1. 23. 16:56

 

홍어장수 무대에 오르다.

- 극단 갯돌의 「문순득표류기」 관람기 -

 

김준(전남발전연구원 책임연구위원)

 

뽀뽀해. 뽀뽀해.

시험이 끝난 고등학생 관객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쳐댔다. 호젓한 성황당에서 순득과 연화가 만났다. 어렸을 적 손꼽친구이지만 신분차이 때문에 연화를 멀리했지만 순득의 본심은 아니었다. 출어를 앞두고 안전과 풍어를 기워하기 위해 찾은 성황당을 찾은 순득을 연화가 찾아왔던 것이다. 일종의 프로포즈였다. 그 느낌을 간파한 학생(?)들이 환호성을 질러댔다. 됐다. 학생들의 반응이 이정도면. 왜 심청전이나 춘향전이 롱런을 하는지 알듯했다. 민초들, 서민들, 백성들, 국민들에 어필하는 스토리에 계속해서 변형되는 판본과 연출기술과 이에 호응하는 관객들 때문이 아니던가.

 

갯돌이 무대에 올린 ‘문순득표류기’는 우이도에서 홍어장수를 하던 문순득(1777-1847)이야기다. 순득은 나이 스물다섯 홍어장삿길에 갑자기 불어 닥친 풍랑으로 표류되었다. 그리고 오끼나와, 필리핀, 중국 등 낯선 나라를 떠돌면서 3년 2개월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마당극은 그 역경을 내용으로 구성된 것이다. 그 내용은 문순득의 후손 문채옥(1920-2011)이 보관해온 유암총서 ‘표해시말’에 기록되어 있다. 유암총서는 정약용의 수제자 강진 출신 이강회의 문집이다. ‘표해시말’은 그보다 앞서 흑산도에 유배 온 손암 정약전이 문순득의 이야기를 듣고 정리한 것을 이강회가 보완한 것이다. 지금은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신안군이 보관하고 있다.

 

우이도는 어떤 섬이던가. 일제강점기 발행한 『한국수산지』(3권)에 소개했다.

‘수산물은 매년 미역 100뭇 남짓, 가사리 1000근 여를 산출한다. 섬사람 중에는 상선으로 일 년 내내 대륙 기타 각 섬 사이를 왕래하며 상업을 하는 사람이 많다. 왕래하는 장소는 나주, 영암, 해남, 법성포, 줄포 등이며 섬으로는 삼태도, 대흑산도, 나주군도 등이다.’

 

문순득이 일찍 장사에 눈을 떴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장사 말고는 달리 생존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이 인근 바다에서 홍어가 많이 잡혔고, 남도사람들은 남녀노소 홍어를 즐겨 먹었다. 다른 생선과 달리 소금으로 갈무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생선이니 삭히면 삭힌 대로 팔수 있었다. ‘표해시말’은 이렇게 시작된다.

 

‘신유(辛酉) 12월. 우이도에서 작은 배에 짐을 싣고 태사도에 들어갔다. 같이 배에 탄 사람은 나의 작은 아버지, 문순득, 이백근, 박무청, 이중원, 김옥문으로 홍어을 사기 위해서이다.’

 

신유년은 1801년이다. 문순득은 다음해인 임술(壬戌)년 정월 18일 큰 바람을 만나 오경에 키가 부러지고 돛을 펴지 못한 채 바람과 조류에 운명을 맡길 수 밖에 없었다. 몇 년 전 문채옥 옹이 생존했을 때 만났었다. 그 때 옹은 문순득의 표류를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상고선 두 척을 가지고 있어 흑산도로 홍어를 사러갔다가 한 척을 먼저 보내고 나머지 한 척을 타고 오다가 흑산도 꼬갈바위 밑에서 풍랑을 만나 표류하여 오끼나와, 필리핀, 중국 등을 돌아 햇수로 5년 만에 돌아왔다. 그 간 소식이 없자 모두 죽었다고 생각해 하의도에서 시집온 부인 김해김씨를 친정으로 보냈다. 하지만 사흘 만에 돌아와 정조를 지키며 남편을 기다렸다.’

 

최부의 표해록, 장한철의 표해록 등 표류의 기록은 적지 않다. 하지만 문순득의 표해록을 으뜸으로 꼽는 것은 구술기록이라는 점 때문이다. 한낱 홍어장수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은 정약전이나 그 기록을 다시 확인하고 보완한 이강회의 역사인식이 돋보인다.

하지만 문순득의 긍정적인 사고와 몸으로 체득한 토착지식과 이를 일상생활 적용하는 문순득의 실험정신이 없었다면 생사를 오가는 긴 표류의 여정을 견딜 수 없을 것이다.

 

공연을 보면서 영리한 놈보다 노력하는 자, 노력하는 자보다 즐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생각했다. 문순득이 그런 인물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리를 꽉 메운 학생들에게도 그 의미가 전달되었을까. 그랬기를 바랄 뿐이다. 열악한 조건에서도 매번 의미있는 소재로 좋은 공연을 무대에 올리는 갯돌에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문순득표류기’가 다양한 판본과 다양한 장르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덧붙여 낙지장수, 소금장수도 무대에 올려 졌으면 한다.